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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탐방 에세이

독도 뚝섬

한강에 뚝섬 독도(纛島)가 있다.
이 지명은 조선시대 태조 때로부터 유래된다.
한양 도성 동쪽 들녘 동교(東郊)에 뚝섬은 있었다.
이 일대는 실제로 섬은 아니다.
동쪽에서 흘러오는 한강이 뚝섬 지역을 둘러 서쪽으로 흐르고
북쪽에서 흐르는 중랑천은 한강 본류와 뚝섬 서쪽에서 만나게 된다.
한강과 중랑천으로 둘러싸인 섬 같다 하여 뚝섬이라 불리었다.

둑신사(纛神祠)라는 사당이 거기에 있었다고 전한다.
그 둑(纛)을 따와서 그 지역을 뚝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강에 있는 '뚝섬'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둑신사'가 있던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충무공은 이 '둑신사'에서 상강과 경칩에 치우천왕에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둑신사의 벽에 치우천왕의 탁록대전을 소재로한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는 것도
둑신사가 치우천왕을 모신 사당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부대가 수군(水軍)이었다는 점에서
 '둑기(纛旗)'는 '소꼬리로 장식한 큰 기'라고 한다. '소'는 머리에 있는 두 뿔을 상징으로 여긴다.
하늘을 향해 뻗은 '뿔'을 '하늘에 내린 뿌리'로 여겨 소를 '하늘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物件'의 '物(만물 물)'과 '件(사건 건)'자에 '牛(소 우)'자가 들어가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 세상 만물은 모두 하늘의 이치를 반영하고 있다는 말이다.
'牛(소 우)'자에 상대되는 '午(말 오)'자는, 소는 뿔이 있으므로 '하늘을 상징'하는 동물이고
말은 뿔이 없으므로 '땅을 상징하는 동물'이라는 인식을 반영하여 만든 것이다.
소는 하늘을 상징하고 해는 하늘의 상징이므로 소와 해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해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서산으로 기우는 마지막 단계가 소의 꼬리에 해당한다.
소의 꼬리는 낮의 끄트머리와 같게 되며 낮의 끄트머리는 자연스럽게 밤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소의 꼬리를 이어 어둠 속에서 등장하는 것이 별이다.
소의 꼬리란 곧 어둠 속 별의 상징이다.
'소꼬리로 장식한 기'는 별이 '해로부터 이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꼬리를 잡은 놈이 임자'라는 말도 어둠과 밤하늘의 별의 위세를 이용한 속담이다.

도성의 동대문 밖으로는 뚝섬에서 그 명산 아차산까지 넓은 들 살곶이벌이 펼쳐졌다.
살곶이벌은 동쪽에서 서쪽로 흐르는 한강과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드는 중랑천이 만나는 곳에
펼쳐진 큰 벌판이다.
태조 이성계가 도읍지를 정하기 전 한양의 지리를 살필 때다.
그는 서울 도성 동쪽 벌판 동교에 나아가 매를 놓아 사냥을 즐겼다.
이 때 응봉에서 활을 쏘자 화살을 맞은 새가 중랑포의 살곶이목장에서 기르는 말의 음료로 사용했던
도요연(桃夭淵)에 떨어졌으므로 그 자리를 살곶이라 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이 후로 새가 떨어진 곳을 ‘살곶이’ 그 주변 벌판을 ‘살곶이벌' '전관평(箭串坪)’이라 부르게 되었다.
옛부터 살곶이벌은 관중 관교 동교 등으로 불리어져 왔다.
이곳은 자연히 평야가 형성되어 풀과 버들이 무성했으므로 조선 초부터 말을 먹이는 목장이 되었다.
또한 임금의 매 사냥터로도 두드러진 곳이어서 ’동교수렵(東郊 狩獵)이란 말을 남기기에 이르렀다.

서울의 상수도는 미국인 콜브란(Colebrane)과 보스윅(Bostowick)이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로부터 상수도의 시설·경영에 대한 특허를 받아서 뚝섬에 정수시설을 건설하였다.
1908년 9월 1일부터 4대문안과 용산 일부지역에 하루 12,500톤의 생산능력으로 수돗물을 공급한 것이 최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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