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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탐방 에세이

4대의혹사건으로 출발한 쉐라톤워커힐

 

아차산이 한강과 조화를 이루면서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산 기슭 명승지에 자리한 쉐라톤워커힐호텔이다.
이 워커힐 호텔은 출발부터 지금까지 숫한 화제를 뿌려왔다.
워커힐호텔은 출발부터 정치적인 이유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바로 '4대 의혹사건'의 하나로 워커힐호텔은 국민적인 관심을 끌기에 아주 충분하였다.
5.16군사정권은 민주공화당의 사전조직에 정치자금을 은밀하게 확보해야 했다.
세칭 ‘4대 의혹사건’을 통해 거액의 정치자금을 조성했던 것이다.
증권파동 워커힐사건 새나라자동차사건 빠찡고사건을 4대의혹사건이라고 불렀다.
워커힐사건은 5ㆍ16이 난 그해 가을 김종필의 중앙정보부가 외화를 획득한다는 명분으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광장동 광나루 일대 18만 평에 동양 최대의 관광단지인 워커힐을 건설하면서
그중 상당액수를 중앙정보부가 횡령한 사건을 말한다.
“한국에는 적당한 미군 위락시설이 없어 연간 3만여 명의 미군이 일본으로 휴가를 간다.”
61년 7월 어느 날 김종필중앙정보부장은 멜로이 유엔군사령관의 말을 듣는다.
그는  미군 위락시설 건립을 결심하고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재가를 받아 추진한다.
김종필은 중앙정보부 제2국장이던 육사8기 동기생 석정선 등에게 워커힐 건설사업의 책임을 맡겼다.

풍수지리적으로 가장 명당이라 불리는 '배산임수' 지형에 자리한 특급호텔은 쉐라톤워커힐이다.
서울 광장동에 위치한 워커힐은 아차산성 남쪽 기슭아래 한강이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자리에 들어앉아  있다. 뒤로는 아차산 봉우리가 솟아 있고 강 건너 들판 동쪽에는 검단산 남쪽에는 남한산성 서쪽에는 관악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아울러 서남쪽은 한강을 비롯해 광나루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여 전망이 탁월하다.
중앙정보부는 총규모 60억 환을 들여 기가 막힌 절경 아차산자락에 이른바 사단법인 워커힐 관광사업 시설을 착공한다. 교통부로 하여금 관광공사법을 만들게 하여 관광공사를 설립, 교통부 장관이 주관하게 했다.
공사도중 산업은행의 융자거부로 시설공사가 부진을 면치 못하자
교통부 장관 박춘식 관광공사 사장 신두영은 1962년 8월부터 63년 2월 사이에 법적ㆍ업무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정부주식 출자금 5억 3,590만 9천여 환을 워커힐 이사장 임병주(당시 중정 제2국 제1과장)에게 전용 가불케 하여 워커힐을 건립케 했으며 임병주는 그중 막대한 공사자금을 횡령했다.
뿐만 아니라 교통부 장관과 각군 공병감에게 압력을 넣어 각종 군장비와 군인들을 동원
무상 노역케 하는 등의 부정을 저지른 사건이다.

72년 12월23일 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한 달도 채 안돼 선경그룹의 선경개발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선경그룹(현 SK그룹)의 고 최종건 회장이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사돈관계다.
권력층의 지원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대연각 화재로 뜻하지 않은 손해를 본 선경그룹의 최종건회장이다.새로운 활력소를 찾기위해 당시 매물로 나온 것이 서울 광장동의 워커힐호텔을 겨낭한다.
최종건이 정부 소유의 워커힐을 매각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것은 72년 12월 초.
그동안 워커힐호텔은 교통부 산하 국제관광공사에서 운영하고 있었다.그런데 10년 내리 적자 신세였다.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워커힐을 민간에 팔기로 한 것이다. 최종건은 워커힐 인수를 통해 전환기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그러나 인수 과정에서 최종건과 최종현이 마찰을 빚는다.
“전혀 업종이 다른 호텔을 인수해서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최종현)
“워커힐은 여느 호텔과 다르다.”(최종건)
“다르다고 해도 결국 숙박업인데, 섬유업인 선경이 호텔을 경영한다는 것이 걸맞지 않아요.”
“사업을 크게 하자면 이것저것 다각적으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호텔은 그날그날 현찰을 만질 수 있는 사업이야.”
“지금 워커힐에 손님이 듭니까.”
“그것은 누가 경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당시 워커힐의 내정 가격은 19억5000만원. 이미 한진그룹에서 관심을 보인 상태였다.
한진 측은 내정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매수대금의 20년 분할 납입을, 정부에서는 10년 분할 납입을 주장하고 있었다. 양측이 샅바싸움을 하고 있을 때 최종건이 나섰다. 내정 가격보다 비싸게, 그것도 일시불로 인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이 내용을 김신 교통부 장관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박정희는 “그럼 선경에 매각하시오. 선경의 최 회장은 아무 일이나 성실하게 잘 해내는 사람 아니오”라고 응원해준다. 그러면서 박정희는 결재서류 빈칸에다 ‘세계에서 제일 가는 호텔로 발전시킬 것’이라는 메모까지 써서 보낸다.
이 말 한마디에 워커힐의 새 주인은 선경으로 바뀌었다.
73년 1월 중순 워커힐 공개 입찰에서 최종건은 26억3200만원을 써냈다.
10억원은 일시납, 나머지는 10년 분할 납입하는 조건이었다.
이 회사는 73년 3월 16일 상호를 ‘선경개발 워커힐’로 바꿨다. 73년은 선경직물을 설립한 지 20년 되던 해였다. 최종건회장으로선 그룹 확장을 위한 시동을 거는 순간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의정부 전선을 시찰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현장에서 즉사한 워커(Walton H Walker·1889∼1950)장군을 기려 그의 이름을 호텔에 따다 붙인 것이다.
워커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패튼 장군 예하의 제20군단장으로
 ‘워커 불도그’(Walker bulldog)라는 별명을 가진 적극적인 전술가였다.
워커 중장은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에 연하는 방어진지를 편성,
새로운 전의를 다지던 50년 12월23일 교통사고로 순직했다.
워커 장군은 그날 의정부 북방의 미 제24사단에 표창장을 수여하고
제24사단에 근무하는 아들 샘 워커 대위의 은성무공훈장 수여식에 참석하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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