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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탐방 에세이

새남터 노들섬 성삼문

 

민족의 젓줄 한가람 한강이다. 한강 노량진 나루가 있었던 곳이다.
경강(京江) 서울의 강 노량진 나루에는 경강에서 두번째로 한강대교가 놓인다.


강의 북쪽 모래벌판은 중죄인을 처형하는 새남터다.
풍수상 음습하고 나쁜 기(氣)가 서려 있는 자리이다.
경강 나루 가운데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다니는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처형장을 둔 것이라고 한다.
두 아파트군(群) 사이 새남터에 순교자를 위한 새남터성당이 보인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던 그 나루에는 예로부터 중죄인을 처형하는 한강 변 모래밭 새남터가 있었다.
두 아파트 사이 철길 옆의 한옥은 새남터성당다.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그곳에 들어선 성당이다.
수양대군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하기로 결심하였으니
그 가장 잔인한 방법이 거열(車裂)이었다.
성삼문은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 유명한 사세시(辭世詩) 를 남겼다.
擊鼓催人命 북소리 덩덩 울려 사람 목숨 재촉 하네
西風日欲斜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는 뉘엿뉘엿 서산에 넘어가는 데
黃泉無一店 황천길에는 여인숙 하나도 없다고 하니
今夜宿誰家 이 밤은 뉘 집에서 묵고 갈건 가.
성삼문의 대여섯 살쯤 된 딸이 수례를 따라오며 울었다.
"사내자식은 다 죽을 것이고 너는 딸이니 살 것이다."
성삼문은 이런 딸을 보면서 비통한 심정을 가누지 못했다.
마침내 최후의 순간이었다.
성삼문의 종이 울면서 술을 올리자 몸을 굽혀 마시고 시를 지었다.
임이 주신 밥을 먹고 임이 주신 옷을 입었으니/
일평생 한 마음이거늘 변할 리야 있으랴./
한 번 죽는 것이 충의인 줄 알았으니/
현릉의 숭백(松柏)이 꿈속에 아른 거리네./
현릉은 문중이 잠든 왕릉이다.
삼빙(三聘)·삼고(三顧)·삼성(三省) 등 그의 세 동생과
맹첨(孟詹)·맹년(孟年)·맹종(孟終)과 갓난아기 등 네 아들도 모두 처형되었다.
여자들은 모두 노예가 되었다.
아버지 성승도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극형에 처해진다.

 

 이원등 상사의  동상이 대교 중간 서쪽에 있다.
이원등 상사는 1966년2월4일 공수특전단 고공침투 낙하조장으로 고공강화 훈련중
동료의 낙하산이 기능고장을 일으키자 전우의 낙하산을 개방시켜주고 자신은 한강에 추락 순직하였다.
이원등 상사의 거룩한 전우애와 희생정신을 길이 본 받기 위하여
육군에서는 1966년2월16일 고 이원등 기념사업위원회을 구성 전장병의 정성어린 성금으로 한강다리위에 동상을 세웠다

한강대교(한강인도교)를 지나면 중간에 노들섬이 있다.
한강대교가 건설된 1917년 당시 다리의 중앙에 있던 모래언덕에
둑을 쌓으면서 중지도(中之島)라고 는 이름을 붙었다
1995년에 노들섬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노들'의 의미는 '백로가 노닐던 징검돌' 이라는 뜻이라 한다.
노들이란 지금의 노량진(鷺梁津)의 우리말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