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강 탐방 에세이

아차산 벌렁바위와 두꺼비탈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시중을 드는 시녀들은 너무 아름다워서 '선녀님'이라고 부른다.
옥황상제가 은밀히 일을 보시는 일을 거드는 시녀도 있었다. 옥황상제께서는 옥으로 된 요강에 오줌을 누었다. 옥뇨(玉尿)가 보이면 황금으로 만든 오줌장군(통)에 담아서 용이 끄는 수레에 싣고서 저 멀리 은하수에 두었다. 가뭄이 드는 곳에 조금씩 뿌려주면 단비가 되어 모든 생물들이 살아난다고 한다.
어느 날 이 시녀는 옥뇨가 모인 요강을 안고 옮겼다.
옮기던 중에 잠깐 아래 나라 땅 위를 보니 금강산을 지나고 있었다.
 '아, 저기가 인간 세계의 신선들이 사는 곳이구나'하고 생각하니 발길이 저절로 멈췄다.
순간, 요강이 엎질러지면서 옥뇨가 쏟아졌다. 쏟아진 옥뇨는 금세 굵은 장대비가 되었다.
아예 금강산의 일만 이천의 봉우리는 장대비에 씻겨 바위들만 서로 보고 서 있었다.
그 사이사이 골짜기에는 봇물이 터진 것처럼 물길이 아우성치면서 내달렸다.
물길은 북한강 골짜기를 쓸어 버렸다. 남한강을 만나서는 더욱 거세져 아차산까지 밀어낼 기세였다.
한강 주변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한 시녀의 실수가 아래 나라 땅 위의 많은 생명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아름답던 산천도 엉망이 되어버렸다. 옥황상제의 귀여움을 받는 시녀이지만 벌을 안 받을 수 없었다.
옥황상제는 벌을 내렸습니다. 천 년 동안을 진흙벌로 뭉개진 한강변에 내려가서 살다 오라는 명령이었다.
그것도 흉측한 두꺼비 껍질을 쓰고 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귀여워했던 시녀이므로 보름달이 뜨는 밤에만 두꺼비탈을 벗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어느덧 천 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한강은 맑아졌고 아차산은 짙푸른 숲으로 되살아났다. 산새가 지저귀고 산짐승들이 뛰어다녔다.
시녀는 두꺼비탈을 쓰고 살았다. 계곡은 울창한 숲으로 덮혀 있었고, 흐르는 물소리만 들렸다.
석 장(丈)이나 되는 비스듬한 바위를 타고 떨어지는 비탈폭포가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겁소(沼)라고 불렀다. 시녀가 살았던 곳이다. 겁소는 두꺼비연못(沼)을 줄인 말이다.
 사람이 살지 않은 아차산은 뭇 짐승들의 천국이었다. 그래서 사냥꾼이 처음으로 발길을 들여놓았다.
사냥꾼은 화살을 쏘아 산 짐승을 잡았습니다. 어깨에 메고 갈만한 한 마리의 짐승만 잡았다.
그리고 겁소에 들렸다. 사냥감을 손질했다. 내장을 꺼내서 버렸다.
그런 중에서도 간을 짤라내고 살점을 떼어 내어 바위에 올려놓았다.
사냥을 해서 얻은 것을 산신에게 먼저 바치는 고수레였다.
사냥꾼이 떠나고 나면, 버린 내장을 차지하기 위해서 여우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바위에 올려놓은 고수레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고수레는 시녀 두꺼비의 몫이었다. 시녀 두꺼비는 밤이 되어서야 고수레를 먹었다.
사냥꾼이 정성껏 올려놓은 고수레는 참 맛이 있었다. 간혹 고수레를 먹는 즐거움에 사냥꾼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사냥감을 걸머진 사냥꾼이 나타났다.
고수레까지 마친 사냥꾼은 땀에 흠뻑 젖은 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겁소에 뛰어 들었다.
튀는 물줄기가 바위의 고수레에까지 떨어졌습니다. 사냥꾼은 첨벙거리며 멱을 감았다.
물속에서 솟아올라 머리채를 걷어올린 사냥꾼은 앳된 젊은이였다.
꾸김없이 쭉 뻗은 다리, 벌어진 어깨,
움직일 때마다 불룩거리는 팔의 근육, 무엇보다도 번뜩이는 구릿빛 피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시녀 두꺼비는 넋을 잃었다. 밋밋한 하늘나라의 사람이 아니었다. 생동감이 넘치는 인간이었다.
넓은 명주천이 있었다면, 얼른 감싸 안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젊은이였다.
이제는 고수레를 먹는 재미보다도 젊은 사냥꾼이 멱을 감는 모습을 되새기며 기다리는 것이 즐거움이 되어버렸다.

 "낭자는 누구시요?"
  "......... "
시녀 두꺼비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얼굴까지 화끈거려서 두 손으로 가슴만 가렸다.
 "나는 멧돼지 이빨에 찔렸소, 고맙소. 헌데 웬 산속에   "
젊은 사냥꾼은 여우에게 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말을 못하시오. 낭자. 무슨 사연이   "
입을 열면 부풀었던 사랑의 풍선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시녀 두꺼비는 그저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그때입니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보름달을 가리기 시작했다. 시녀 두꺼비는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가야 해요. 낭군님. 바로요."
그제서야 시녀 두꺼비는 자기의 손목이 젊은 사냥꾼에게 잡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다간 흉측한 두꺼비 모습을 보여줄까 봐 더욱 조바심이 났다.
"낭군님. 낭군님."
애처로운 눈빛을 머금고 젊은 사냥꾼에게 잡힌 손목을 빼냈다.
"갑자기 어디를 가신단말입니까. 어디를요?"
젊은 사냥꾼은 무릎을 세워 앉았다.
 "묻지 마세요. 꼭 가야해요. 꼭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나요. 언제요."
젊은 사냥꾼은 돌아서서 발걸음을 띄는 시녀 두꺼비를 향하여 소리쳤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요. 보름달이 뜨는 밤요."
시녀 두꺼비는 뒤돌아서서 젊은 사냥꾼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얼굴에 활짝 핀 미소는 보름달이 겁소에 내려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겁소는 캄캄한 밤이 되어버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름달이 다시 떴다.
풀섶으로 가리우고 꽃잎으로 꾸민 시녀 두꺼비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젊은 사냥꾼 또한 곱게 땋은 댕기머리에 하얀 옷을 입었다.
화살과 화살통은 없었다. 그렇게 선남선녀는 겁소에서 만났다.
  "낭자"
  "낭군님"
가까스로 내는 신음 같은 외마디 소리뿐이었다. 두 남녀는 꼭 끌어안았다.
젊은 사냥꾼의 억센 팔에 안긴 시녀 두꺼비의 허리가 휘어질 것 같이 그렇게 꼭 끼어 안았다.
가뿐 숨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사이에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달빛도 겁소의 물결 위에서 너울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겁소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안돼요."
시녀 두꺼비는 젊은 사냥꾼을 밀쳤습니다. 일어선 시녀 두꺼비는 떨고 있었다.
 "웬 일이요. 낭자, 대체 무슨 일이   "
따라 일어선 젊은 사냥꾼은 뭐가 뭔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다음에 만나요. 다음엔 숨어 있어야 돼요.
 절대로 달빛에 보여서는 안 돼요. 제가 부를 때까지 꼭꼭 숨어 있어야 돼요"
시녀 두꺼비는 다시 잡힌 손을 뿌리치고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젊은 사냥꾼은 우두커니 서서 숲속을 바라볼 뿐이다.
찬바람이 젊은 사냥꾼의 얼굴을 스쳤습니다. 겁소는 캄캄한 밤이 되었다.
번뜩이는 섬광이 검은 하늘을 갈랐다. 이내 우렛소리가 터져 나왔다.
몰아치는 비바람은 숲속을 쓸어버릴 것 같았다.
 젊은 사냥꾼은 보름달이 뜨기도 전에 겁소에 와서 숨어 있었다.
모기에게 물리고 벌레에게 뜯기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직 아리따운 시녀 두꺼비를 만나는 기쁨뿐이었다.
보름달이 떠올랐다. 시녀 두꺼비는 숲속을 헤치고 나타났다.
사뿐사뿐 모래펄을 건너서 물속에 잠겼다. 긴 목을 젖히고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쭉 뻗은 다리를 물 위에 내놓고 번갈아 저었다. 달빛을 머금은 물결이 퍼져 나갔다.
뒤척이는 곳마다 풍만한 곡선이 흘렀다. 그렇게 멱을 감은 시녀 두꺼비는 바위에 올라섰다.
하늘을 우러러 애원하듯이 두 팔을 하늘거렸다.
다시 휘어감아 짜듯이 꼬인 온몸을 바위 끝자락에 올려놓았다.
터질 것 같이 움츠린 여체를 달빛이 어루만졌다.
그래서 서서히 발돋움하는 한 마리의 학은 바위를 수놓듯 감아 돌았다.
온통 숲이 춤사위 따라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숲속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흔들거려도 쏟아지지 않는 겁소의 물결이 달빛을 머금고 출렁일 뿐이었다.
시녀 두꺼비는 비탈폭포의 왼쪽 숲길을 넌지시 가리켰다. 그리고 춤사위를 마쳤다.
젊은 사냥꾼은 시녀 두꺼비가 사라진 비탈폭포의 왼쪽 숲길로 조심조심 다가섰다.
그리고 바위길을 따라 올라갔다.

"아니, 낭자."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언젠가 모두 알려 드릴게요."
시녀 두꺼비는 두 팔로 젊은 사냥꾼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푹신하게 깔린 풀섶 위로 쓰러졌다.
그렇게 선남선녀의 만남은 이어졌다. 달빛이 지기 전에 헤어졌다.
그럴수록 시녀 두꺼비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은 점점 다가왔다.
시녀 두꺼비는 젊은 사냥꾼과 헤어지는 것이 싫었다.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녀 두꺼비는 자기에게 있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했다.
"아니, 그러면 하늘나라로 올라가셔야 되나요."
젊은 사냥꾼은 정색을 하며 되물었다.
"아니오. 정말 가기 싫어요. 여기 낭군님과 오래오래 있고 싶어요."
시녀 두꺼비는 젊은 사냥꾼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젊은 사냥꾼은 생각에 잠겼다. 그 또한 시녀 두꺼비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다.
"낭자, 나는 낭자와 헤어지는 것이 정말 싫소. 그러나 어쩌면 좋소.
낭자가 이 세상 우리와 있게 되면, 아프고  병들고 늙고 죽게 되요. 썩어서 흙이 될 뿐이요.
차마 그것을 못 볼 노릇이요. 하늘나라에 가서 천 년 만 년 살아야 되지 않겠소."
젊은 사냥꾼의 얼굴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기꺼이 자기의 아픔을 안고 살겠다는 뜻이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산다고 해서 그게 잠시겠어요.
사랑해서 아들, 딸 낳으면 되잖아요.
사랑이 씨앗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천만년 이어지면 되잖아요. 그걸 몰랐어요. 하늘나라에 있을 때는---   "
시녀 두꺼비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빛났다. 입술을 쫑긋 다물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저의 말씀을 잘 들으셔야 돼요. 오랫동안 생각한 거예요.
저는 백중날(음력 7월 보름) 마당 바위 위에 서 있어야 돼요.
그러면 용이 되려는 이무기가 한강에서 올라올 거예요.
그 이무기가 저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요. 그 이무기를 쏘면 돼요. 머리를 정확히 쏘아야 돼요."
 "그렇다고 이무기들이 다시 안 오겠소. 한강에는 이무기들이 버글대는 데"
"아니에요. 한강에 용이 될 수 있는 이무기는 별로 많지 않아요.
있다고 해도 우리가 얼른 두꺼비 껍질 속에 들어가 버리면 돼요.
이무기도 뱀이라서 두꺼비 껍질을 아주 싫어해요. 그러니 두꺼비 껍질 속으로 쏙 들어갈 수 있게 알몸으로 오세요."
"다음엔 어떻게 되나요?"
젊은 사냥꾼은 호기심과 기쁨이 범벅이 되었습니다. 시녀 두꺼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다음엔 우리의 세상이에요.
하늘나라에서는 그날 데려 가지 못하면 하늘나라의 명부(名簿)에서 저를 빼버려요.
그때부터 하늘나라의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도 괜찮겠소. 낭자--- ."
젊은 사냥꾼은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를 택한 시녀 두꺼비가 고맙고 애처로웠다.
"당신이 있잖아요. 하늘나라와도 바꿀 수 없는 당신이 여기 있잖아요."
시녀 두꺼비는 일어나 앉았다. 두 손으로 젊은 사냥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긴 밤을 보름달과 함께 있었다.
 

그 동굴 속에는 황금 박쥐가 나들이 와 있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서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황금 박쥐는 한강 북쪽의 강변에 우뚝 솟은 용당산 밑 토굴에 살았다.
강물이 들락거리는 토굴이어서 이무기들의 쉼터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서로는 친하게 지냈다.
황금 박쥐는 숨을 죽이고 두 남녀가 나누는 이야기를 곰곰이 새겨들었다.
보름달이 지고 캄캄해지자, 바로 토굴로 돌아왔다.
이웃 동굴에서 들은 이야기를 이무기들에게 들려주었다. 이무기들은 걱정이 태산처럼 쌓였다.
가장 나이 많은 이무기가 이 일을 맡게 되어 있었다.
바로 시녀 두꺼비를 하늘로 데려 가면서 자기도 용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젊은 사냥꾼이 화살로 머리를 쏜다고 한다. 용이 되지도 못하고 죽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늘나라의 명령을 거스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결론을 내렸다.
머리가 둘 달린 쌍머리 이무기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머리 하나를 맞아도 남은 머리 하나로 거뜬히 마당 바위 위의 시녀 두꺼비를 낚아챌 수 있는 쌍머리 이무기다.
운명의 백중날이다. 둥근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마당 바위는 더 더욱 넓어 보였다. 그때 시녀 두꺼비가 마당 바위 위에 나타났다.
달빛에 비쳐진 시녀 두꺼비는 또 하나의 달님이었다.
달빛만이 시녀 두꺼비의 아름다운 곡선을 훔치며 흘러내렸다.
젊은 사냥꾼은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숨을 죽였다. 그때 쏜살같이 내달려 오는 것이 있었다. 이무기였다.
젊은 사냥꾼은 힘껏 활시위를 당겼다. 마당 바위 위에 다다른 이무기를 향하여 쏘았다. 명중이었다.
그러나 웬 일입니까.
화살 맞은 고개 하나를 떨구고 다른 고개 하나를 쳐든 이무기는 금세 시녀 두꺼비를 감아버렸다.
다시 활시위를 당겼지만 쏠 수가 없었다. 이미 이무기의 머리는 시녀 두꺼비의 머리에 포개져 있었다.
그런 이무기의 몸뚱이는 구름이 되었다. 어느새 시녀 두꺼비를 휘감았다.
구름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하늘 멀리 멀리 올라갔다. 그렇게 시녀 두꺼비는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젊은 사냥꾼은 활을 내동댕이치고 울부짖었다. 울부짖는 소리가 산울림이 되어 되울렸다.
되울릴 때마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캄캄한 밤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스산한 바람이 일었다.
번개가 번쩍이며 하늘길을 열었다. 이내 천둥소리가 아차산을 흔들었다.
몰아치는 비바람에 맞섰던 젊은 사냥꾼도 벌렁 드러누웠다. 모든 것이 끝났다.
 <광진구와 광진문화원이 낸 '아차산의 전설'에서 옮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