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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탐방 에세이

광나루와 버드나무

 

조선시대 서울에서 중랑천을 건너 이곳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넌 후
광주를 거쳐 남쪽 지방으로 왕래할 수 있었다.
이 나루는 강원도와 남쪽 지방으로 가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이다.
오늘날은 그 자취를 찾을 수 없으나 현재의 광진교가 놓여져 있는 한강 북쪽이다.
광진은 처음에 중급의 나루였으나 곧 승격하여 태종 때에 별감이 배치될 만큼 요충지로 발전되었다.
조선시대 한강과 남한강 및 북한강 유역을 관리하면서 수운을 담당하고 있던 곳이 좌도수참(左道水站)이며,
 좌도수참의 별감이 이곳 광나루에 상주하면서 한강을 왕래하는 사람들을 기찰하고, 한강의 조운을 관장하였다.
 세종 때 삼밭나루가 개설되면서 광나루의 기능이 약화되었으며,
조선후기에는 송파나루가 번성하여 광나루 - 삼밭나루 - 송파나루 순으로 발전하였다.

"날 저물게 광나루에 와서 말을 세우고 배를 부른다./
 물은 푸른 벼랑 아래로 감돌고 돛대는 흰 갈매기 앞을 지나누나/
강가 갈밭에는 흰 눈이 날리고 사당 앞 잣나무에 맑은 연기가 흔들린다/
해질 녘 배 위에 앉으니 시심(詩心)이 가볍게 떠오르누나/"
조선초기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이 해질 녘에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며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서거정은 세종26년(1444)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사제감직장 집현전박사를 거쳐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45년 간 여섯 임금을 모시며 신흥왕조의 기틀을 잡고
문풍(文風)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광진을 지날 때마다 풍경을 사랑하여 많은 시를 남긴 서거정은 만년에 광나루 조용한 마을에 거하며
촌노어옹(村老漁翁)들과 이웃하며, 번잡한 세상을 멀리했다고 전한다.
광나루는 예전에 이곳에 버드나무가 많아 양진(楊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 흔적마저 서라지고 표석(標石)만이 남아있지만
강원도 일대에서 출발한 뗏목이 도착지이기도 한 광나루는 서울에서 경기도 광주로 가는 가장 빠른 나루이기도 했다.
1930대 경강 세 번째로 놓은 광진교가 천호대교를 이웃하며 강남북을 연결하는 주요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

 

 광나루는 세자의 자리를 벗어버린 양녕대군이 광주로 가던 이별의 아픔을 간직한곳이기도 하다.
신라 문무왕 12년(627)에 화엄종을 개창한 의상대사가 화양사를 창건한다. 오늘날의 영화사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조선왕조 여섯 번째 임금자리에 오른 단종.
숙부인 세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1456년 6월 22일 돈화문을 나와 화양정(성동구 화양동)에서 하루를 묵은 후
환관 안로의 전송을 받으며 중추부사 어득해와 군졸 50명의 감시 속에 유배 길에 올랐다.
단종은 광나루에서 이천, 여주까지는 남한강 뱃길을 이용하였고,
여주에서 청령포까지는 역로를 이용하여 일주일 만인 6월 28일에 도착하였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어나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을 이로다.
흐르는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경기민요 노들강변의 가사이다.
버드나무는 시와 노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해 우리에게는 아주 친숙한 나무이다.
실제로도 우리나라 강가이나 냇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한강가에서도 노들강변 광나루 난지도한강공원 등 버드나무가 번성한 곳이 참으로 많다.
버드나무가 물가에 많은 이유로는 버드나무가 물을 매우 좋아하는 수인성 식물이고
잔뿌리가 땅속에서 그물처럼 서로 엉켜 강둑을 홍수등에서 보호해주고 있는 점을 든다.
또 버드나무에는 우리의 질병을 치료해주는 좋은 성분이 있어
우리 주변에서 번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3월쯤 버드나무에 물이 오른다.
어릴 때 연필 정도의 굵기 버드나무가지로 호드기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또 봄이 오면 버들강아지를 맛있게 따먹으면서 껌처럼 씹고 다녔다.
버드나무는 정수작용이 있어서 우물가에도 많이 심어 왔다.
유럽에서도 버드나무껍질에서 추출한 살리신을 주성분으로
해열 진통 소염 심장병 뇌졸중 등에 사용하여 왔다고 한다.
이같이 수양버들에는 해열이나 진정의 효과가 있는 살리신이 있어
겨우내 시달린 몸을 달래고 질병예방을 위해 버들피리를 불고 즐겨 일상에서 활용하였다고 한다.
인도에는 수양버들나무는 적지만 불교와는 깊은 관련이 있다.
구강 위생뿐만 아니라 일곱가지 병을 없앤다고 하는 버드나무의 약효를 중요시 했다.
석가는 제자들이 탁발이나 수행을 위해 각지를 돌아다닐 때
반드시 휴대하는 18종의 도구의 하나로  수양버들나무 칫솔을 규정했다.
이를 단타카스타 즉 치목(齒木)이라고 말한다.
이쑤시게를 일본어로 よう-じ라고 한다.
우리도 요지로 발음, 그대로 쓰고 있다.
사실 요오지도 한자로는 楊枝로 버드나무 가지를 뜻한다.
양류관음상(楊柳觀音)도 있다.
버드나무 아래 바위에 앉아있거나 오른 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대자비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병고(病苦)를 치유하는 관음이다.
자비심이 많고 중생의 소원을 들어줌이 마치 버드나무가 바람에
나부낌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버드나무는 착생률이 좋아 어떤 방식으로 땅에 심어도 뿌리를 내린다고 한다.
잔가지 속껍질을 벗겨내면 약간 튀어나온 울퉁불퉁한 목질부가 보인다.
이곳이 땅에 닿기만 하면 즉시 뿌리를 내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서양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는 버드나무껍질에서 추출한 살리신을 주성분으로 
해열, 진통, 소염, 심장병, 뇌졸중 등에 사용하여 왔다.
현재 약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아스피린'의 주원료도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물질이다.
아스피린은 약으로 등장된 때로부터 100년 이상이 지났어도
지금까지 강력한 해열진통과 항염증약으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
아스피린은 진통약으로서 병적으로 높아진 체온을 떨구지만 체온을 
정상 이하로 떨구지는 않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