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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탐방 에세이

겸재 정선과 귀거래 그리고 덕양산

 

덕양산 기슭 행호강가에 자리한 정자 귀래정 그림이다.
정자를 세운 이는 조선시대 형조판서를 지낸 죽소 김광욱((竹所 金光煜·1580∼1656)이다.
그는 광해군 5년(1613) 폐모론이 제기되자 이를 반대하다 모친상을 핑계삼아
병조정랑의 벼슬을 버리고 행주로 물러 나와 10년간 은거해 살았다.
인조 원년(1623)에 인조반정이 성공하자 다시 벼슬을 살면서도 늘 행주로 돌아와 지내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이에 옛날 물러나 살던 집을 고치고 그 정자에 귀래정이란 현판을 달았다.
동진(東晋)시대 대표적인 은거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온 이름이다.
1742년에는 김광욱의 증손자인 동포 김시민(東圃 金時敏·1681∼1747)이 주인이 되어 서울 집을 오가며 살고 있었다. 김시민은 겸재와 인왕산 밑 한 동네에서 사는 친구로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1651∼1708)과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 1653∼1722) 문하에서 함께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뿐만 아니라 김시민은 사천 이병연(쏏川 李秉淵·1671∼1751)과 함께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1564∼1635)의
외현손이라 서로 8촌 형제에 해당하는 친척간이었다.
겸재와 사천은 어려서부터 김시민과 함께 이 귀래정을 무시로 출입했을 것이다.
덕양산이 병풍처럼 둘러친 강변 산자락에 큰 규모의 기와집이 지어져 있다.
행랑채, 바깥사랑채, 안사랑채, 안채로 꾸며진 제법 호사스런 대가 집 규모다.
본채 오른쪽 뒤로는 별당이 하나 있고 왼쪽 쪽문 밖으로는 정자가 우뚝 솟아있다.
이것이 귀래정이라고 전한다.
그 소나무와 전나무가 쌍으로 서있고 집 뒤편은 온통 잡목 숲으로 뒤덮여 있다. 
솔숲에 둘러 쌓인 그 집 아래 강가에는 이 집 전용인 듯한 거룻배 한 척이 매어져 있다.
으리으리한 이 대가 집에 어디서 무엇을 실어다놓고 나가는지
쌍돛단배 한 척이 돛폭에 골바람을 받으며 강으로 미끄러져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