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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탐방 에세이

양천팔경(陽川八景)

'양천사람은 바람 마시고 죽을 마신다’, ‘양천 원님 부임할 때 울고 나갈 때 운다.’
양천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한강 강변 마을이라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면적은 얼마되지 않고
넓은 침수지대의 목초가 무성한 벌판이 있는 곳이 있다.
강변의 벌판은 바람이 세고 농사를 지어도 침수로 인하여 흉년이 들 때가 많아 이런 속담이 나왔다고 한다.
양천은 아름다운 경치에 도성과 가깝기 때문에 명사들과 교류하기가 쉬운 곳이기도 했다.
궁산은 양천향교 뒤에 위치한 얕은(해발 74.3M) 산이다. 파산 성산 관산, 진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조선시대까지 양천(현)은 지금의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를 모두 관할하는 곳이었다.
 현재 양천(현) 관아터  양천향교 그리고 양천(현)의 진산이었던 궁산과
궁산 정상에 축조된 둘레 약 220m의 양천고성지는 행정구역상 서울시 강서구 가양1동에 속해 있다.
궁산 남쪽 평지에 관아가 있었고, 그 북쪽 언덕에 향교가 있으며, 정상 바로 밑에 소악루가 있다.
소악루 위쪽의 능선부를 감싸 두른 성곽이 현재 '양천고성지'로 불리고 있다.
양천현 관아가 있는 곳은 현재 양천향교역 북쪽, 양천초등학교에서 겸재정선기념관과 흥원사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백제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양천 고성지가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행주산성과 더불어 의병들의 집결장소였으며,
6.25동란 때에는 국군들의 주둔지 역할을 한 곳으로 군사요충지였다고 한다.
한양 도성 서쪽 들녘은 서교이다.
서교에는 연희궁 서잠실과 용산·마포 일대의 각종 창고만 있었다.
한강변에 전개되는 풍치는 가장 광활하고 웅대하였다.
양화진·성산·망원정·선유봉·공암 등지의 절경은 중국에서 온 사신들과
우리 나라 사대부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정선을 비롯한 화가들의 화폭에도 담겨졌다.
서교의 승경은 한강, 강변의 산봉우리, 숲, 정자 등 자연 풍경과 인공 시설들의 조화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서교의 승경은 범위가 넓어 용산(남호) 팔경 마포 팔경 서호 팔경 양천 팔경 파능 팔경 등으로 나눈다.
그 범위는 용산에서 행주산성까지 이어진다.

양화진·행호 일원에는 절경을 자랑하는 여덟 곳 양천팔경이 있다.
선유봉·이수정·소요정·공암·소악루·개화사·낙건정·위래정 등이
바로 양천 팔경으로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의 발길을 묶었다.
특히 선유봉의 소나무 숲이 가장 빼어난 절경으로 꼽혔다.
악루청풍(岳樓淸風) ; 소악루의 맑은 바람
양강어화(楊江漁火) ; 양화진의 고기잡이 불
목멱조돈(木覓朝暾) ; 목멱산의 해돋이
계양낙조(桂陽落照) ; 계양산의 낙조
행주귀범(杏州歸帆) ; 행주로 돌아드는 고깃배
개화석봉(開花夕烽) ; 개화산의 저녁 봉화
한산모종(寒山暮鐘) ; 겨울 저녁 산사(개화산 약사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이수구면(二水鷗眠) ; 안양천에 졸고 있는 갈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