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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탐방 에세이

효녀 '중랑'을 한내에서 만난다.

서울의 중랑천이다.
옛날 중랑천은 도봉동 부근에서는 서원천 상계동 부근에서는
‘한강의 새끼 강’ 이라는 뜻으로 ‘샛강‘이라고 불리웠다.
한강의 위쪽에 흐르는 냇물이라는 뜻으로 “한천, 한내”라고도 했다.
최욱래 한양대 교수(국문학)가 전하는 중랑천의 전설이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조성할 때이다. 능역에 백성들의 동원령이 떨어졌다.
근처 면목동에 사는 병든 노인도 동원령을 받았다.
그 노인에게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 제가 대신 능역에 나가겠어요.”
나이 어린 딸 ‘중랑‘이 자청하고 나섰다.
그 중랑은 남장으로 낮에는 능역에 참여하하였다.
그는 낮에는 능역에 일을 하였고 밤에는 아버지는 병간호를 하며 정성껏 모셨다.
공사가 끝날 무렵 중랑이는 최우수 일꾼으로 선발되어 표창을 받게 되었다.
그는 표창식 직전 건원릉을 도망쳐 나왔다. 남자로 변복을 한 일이 발각될 것이 두려웠다.
관리들은 중랑이를 추격했으나 중랑이는 이를 따돌린다.
관리들은 한내 물가에 빨래하고 있던 처녀에게 물었다.
그 처녀는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었다.
“바로 네가 능역을 하다 도망친 그 놈이지!”
군졸대장이 그 처녀에게 따져 물었다.
그는 도망쳐 집에서 남장을 여자의 옷으로 갈아 입고 한내로 나와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대로 신고온 짚신에 묻은 황토를 다 씻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발각된 것이다.
정부는 중랑이의 속 사정을 듣고 후하게 상을 주었다고 한다.
그 중랑이의 충효의(忠孝義)를 높이 사서 표창하고
한내를 중랑의 이름을 따서 ‘중랑천’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옛날 옛날 어느 옛날.
서울에서 전국 장사모임이 열리게 되었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경상도 장사가 허겁지겁 짐을 꾸려
서울로 가던 도중 집으로 돌아가는 강원도 장사를 만났다.
  "서울의 도성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었고 여기까지 오느라 기운이 빠졌을테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 "  강원도 장사가 말하는 것이었다.
경상도 장사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더욱 서둘러 길을 재촉하였다.
상봉동까지 왔을 때는 갈증이 나 더 이상 발을 옮길 수 가 없었다.
때마침 옆으로는 중랑천이 흐르고 있었고  그 물을 마시기 위해 바위에 몸을 기대 엎드렸다.
물이 별로 흐르지도 않거니와 짚었던 바위에 손과 무릎의 자국이 깊게 패여져 있는 게 아닌 것인가.
아마도 바로 직전에 강원도 장사가 물을 마시고 갔나보다 생각하고
목을 축일 정도의 물만 마시고 일어서려 했다.
  "저 사람이 냇물을 모두 마셔 농사를 지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식수마저도 없어져 버렸으니
이는 분명 사람이 아닌 요물임이 틀림없다"
갑자기 포졸을 앞세운 마을 사람들와서는 애워싸는 것 이었다.
"나는 요물이 아니고 사람이며 내가 오기 전에 강원도에서 온 장사가 먼저 거의 모든 물을 마시고
남은 물을 조금 마셨는데 그것도 죄가 되느냐"
경상도 장사는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그는 관아로 끌려가 버리게 되었다.
 "내 한이 물을 말려 사람이 살 수 없는 검은 땅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며 
중랑천은 해마다 홍수로 넘쳐흘러 농사가 망치게 될 것이다'
매일 모진 고문을 받은 그는  죽음을 직전에 이런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 후 해마다 중랑천은 범람하였고 엎드려 자국이 생긴 바위가 있던 마을 일대는
검은 가루가 날리는 곳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