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강 경강은 마포 망원동-난지도를 지나면서 행호(杏湖)로 그 이름이 바뀌어 불린다.
한강물은 용산에서 서북쪽으로 꺾여 양천 앞에 이르면 맞은편의 수색, 화전 등
저지대를 만나 강폭이 갑자기 넓어진다.
안양천과 불광천이 강 양쪽에서 물머리를 들이미는 곳부터 서호 또는 동정호 등으로 불렀다.
창릉천(昌陵川)이 덕양산(德陽山) 산자락을 휘감아 돌며
한강으로 합류하는 행주(杏州) 앞에 이르러서는 그 폭이 더욱 넓어진다.
이 곳을 행호라고 한다. 지금의 행주산성 앞을 가리킨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궁산은 절경으로 꼽힌다.
옛 양천고을의 진산으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한강변 풍광은 시정을 불러일으키는 명승이었다.
아울러 이곳 현감으로 왔던 겸재 정선은 그 풍광을 진경산수로 읊고
사천 이병연은 진경시를 지어 어우러진 작품을 연출하였다.
양천고을의 옛이름을 따라 파릉팔경이라고도 한다.
1797년(정조 21) 가을에 정조가 원조의 능인 장릉을 양천 향교 종해헌에 들러 남긴 시이다.
강한추도필연횡(江漢秋濤匹練橫) 한강 가을 물결, 무명 베를 펼쳐 놓은 듯,
홍교답과만제경(虹橋踏過萬蹄輕) 무지개 다리 밟고 가니 말발굽 가벼웁다.
위간사야황운색 (爲看四野黃雲色) 사방들녘 바라보니 누런 구름 일색인데,
일사양천소주병(一舍陽川小駐兵) 양천 일사에서 잠시 군대 쉬어간다.
행호하면 웅어가 단연 제일 떠오른다.
웅어는 멸칫과의 바닷물고기. 몸의 길이는 22~30cm이다.
몸은 옆으로 납작하고 뾰족한 칼 모양이며, 비늘이 잘다.
몸빛은 은빛을 띤 백색이다. 봄과 여름에 강으로 올라와 산란한다.
압록강 대동강 임진강 한강 금강 영산강 등지의 민물과 짠물이 합쳐지는 곳에 분포한다.
웅어철이 돌아오면 가장 좋은 것은 임금에 진상하고 남은 것은 한양의 세도가들 차지였다.
웅어는 이제 더 이상 한강의 명물이 아니다.
300년이 지난 지금 서울과 고양의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는 웅어는 대부분해 남 앞바다에서 잡아온 것이다.
비록 초여름 행주산성 앞 한강을 가득 메우며 밤을 밝히던 웅어잡이 고깃배들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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