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즐기며' 사는 낙건정 행주산성 덕양산에 충혜공 김동필(金東弼·1678∼1737)의 낙건정 정자가 있었다. 낙건정은 행주대교가 지나는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덕양산 끝자락 절벽 위에 있던 정자다. 이조 호조 형조 공조등 6 판서를 모두 역임한 낙건정 김동필(金東弼.1678-1737)이 벼슬에서 물러나 '건강하게 즐기며' 살기위해 지은 집이다. 김동필은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1653-1722)의 문인(門人)으로 노론과 소론으로 갈릴때 비록 소론이 됐지만 스승과 벗들과의 관계 때문에 항상 노론적 성향을 잃지 않았던 인물이다. 소론의 공격으로 경종 1년(1721) 신임사화(辛壬士禍)가 일어나 노론 4대신들이 처형 되고 왕세제로 있던 영조가 환관들의 모함으로 위기에 몰렸던때 과감이 나서 이들 환관을 탄핵해 영조를 위기에서 구.. 더보기 겸재 정선과 귀거래 그리고 덕양산 덕양산 기슭 행호강가에 자리한 정자 귀래정 그림이다. 정자를 세운 이는 조선시대 형조판서를 지낸 죽소 김광욱((竹所 金光煜·1580∼1656)이다. 그는 광해군 5년(1613) 폐모론이 제기되자 이를 반대하다 모친상을 핑계삼아 병조정랑의 벼슬을 버리고 행주로 물러 나와 10년간 은거해 살았다. 인조 원년(1623)에 인조반정이 성공하자 다시 벼슬을 살면서도 늘 행주로 돌아와 지내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이에 옛날 물러나 살던 집을 고치고 그 정자에 귀래정이란 현판을 달았다. 동진(東晋)시대 대표적인 은거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온 이름이다. 1742년에는 김광욱의 증손자인 동포 김시민(東圃 金時敏·1681∼1747)이 주인이 되어 서울 집을 오가며 살고 있었다... 더보기 겸재 정선의 양천팔경첩(1)개화사 겸재 정선의 양천팔경첩 가운데 그림 하나로 그림 개화사이다. 현재 서울 강서구 개화동 332의12에 있는 개화산 약사사의 모습이다. 개화산은 서울의 서쪽 끝 강서구 개화동에 위치한 표고 128.4m의 잔구성 구릉산지이다. 그야말로 동네 뒷산 수준이다. 일명 ‘주룡산(駐龍山)’이라고도 했다. 신라 때 한 도인이 주룡선생이라 자칭하며 이 산에 숨어 살면서 도를 닦고 세상에 나오지 않다가 이곳에서 늙어 죽었다. 그가 이 곳에 살 때 매년 9월 9일에는 동자 두 세명과 더불어 높은 곳에 올라가 술을 마시며 구일용산음(九日龍山飮)이라 하였으므로 주룡산이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자리에는 이상한 꽃 한송이가 피어났다. 이를 두고 사람들이 이 산을 개화산이라 일컬었다. 지금의 개화사가 주룡선생.. 더보기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4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