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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구석구석

한강에 배 띄워라, 굽이굽이 사연일세

한강에 배 띄워라, 굽이굽이 사연일세

손종흠 지음 | 김 억 그림

 

 

그때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

한강에서 길어올린 이야기 풍속사

조선 최대의 교통과 물류 유통의 중심지였던 나루터. 삼국시대에는 국력과 국경을 둘러싼 힘겨루기의 격전장이었던 중원. 왕실이나 사대부들이 풍류를 즐기던 놀이터였으며, 그곳을 터전으로 살았던 민초들의 슬픔과 한을 풀어내던 해원의 장소였던 한강은 상층과 하층의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적 문화공간이었다. 시끌벅적한 삶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지던 시절로 돌아가, 우리가 미처 몰랐던 한강의 또 다른 면모를 들려주는 이야기 풍속사.

 

이 책의 의의 및 특징

⁃ 지리적 한강과 역사적 한강 그리고 인문학적 한강이 한데 녹아든 최초의 한강 풍속사.

⁃ 굽이굽이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녹아 있는 철저한 고증과 문화 콘텐츠로서의 가치 재발견.

⁃ 역사적 사실과 지배층의 문화, 서민의 애환과 해학이 교차하는 한강 풍류 기행.

⁃ 고조선부터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상흔을 안고 흘러온 한강 수난사.

 

작가 소개

손종흠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의 신화와 문화, 역사를 풀어 책으로 서술해 온 그의 주요 논저로는 『다시 읽는 한국신화』 『속요 형식론』 『손종흠 교수의 고전시가 미학강의』 『조선남녀상열지사』 『한국의 다리』 『어부사시사의 시간성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1991년부터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며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림_김 억

홍익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마음에 닿는 풍경을 눈에 담아 온 뒤 나무판을 촘촘히 깎아 찍어 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2010년 포스코갤러리에서 '김억 국토', 경북 영천의 시안미술관에서 '풍경을 만지다―김억의 재구성된 풍경'이란 초대전을 가졌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현재 경기도 안성에서 직접 지은 목조 가옥에서 살면서 때론 '작은' 농사도 짓고, 마을 공동체에도 참여하면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 한강에서 떼돈 번 남정네, 빈털터리로 돌아간 사연

․ 사랑에 웃고 사랑에 울던 한강 기생 스캔들

․ 유럽에 살롱이 있다면 조선에는 정자가 있다

․ 궂은비 내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 양반도 뛰어든 얼음 채취 사업과 서빙고

․ 송파 나루에 서린 여인의 한

․ 갈매기와 친구가 될 수 없었던 압구정 작명의 비밀

․ 용산강 나루에 나타난 용의 조화

․ 저자도 살인 사건의 전말

본문 중에서...

 

송 씨와 유 씨 부인은 송파나루에 이르러 짐을 내리려는 순간 남편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 년 가까이 죽을 고생을 해 가면서 남한산성 축조 비용을 마련했던 송 씨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 송 씨 부인은 하늘을 우러러 오래 통곡을 한 후에 송파나루에 있는 여울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사연으로 인해 이곳은 쌀섬여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뒤로 커다란 문제가 생겼다. 배와 뗏목이 수없이 오가는 곳이 한강인데, 안개가 짙거나 날이 어둑어둑한 때에 쌀섬여울 부근을 지날 때면 뱃사공들이 무시무시한 환영을 보게 된 것이다. (p.89)

아우라지에서 목재를 뗏목에 싣고 한강 물길을 따라 내려오는 떼꾼들은 서울까지 와서 넘기게 되면 소 한 마리를 살 정도의 거금을 손에 쥐었다. 떼꾼들이 뗏목을 넘기고 값으로 받는 목돈을 떼돈이라고 했다. 이 말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란 뜻으로 지금까지도 쓰는 표현이다. (p.112)

18세기에는 사대부의 후손으로 오래전부터 장빙업藏氷業을 해온 민간 사업자와 서민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인 빙계氷契가 얼음 영업권과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움을 벌이는 일까지 발생했다. 민간 장빙업자는 양반 사대부의 후손들이고, 빙계를 조직한 사람들은 한강을 중심으로 상업을 해서 부를 축적한 경강상인京江商人들이었기 때문에 권력과 신분에서 밀린 빙계에 속한 사람들이 번번이 손해를 보곤 했다. (p.139)

마침내 그는 큰 결심이라도 한 듯이 배 안에서 쉬고 있는 배 주인에게 가서 간절한 어조로 말하였다.

“선주님, 이번에도 물에 사는 용과 성황당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강화도 앞을 지날 때는 용과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선주는 화를 내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 사람아! 배가 부서져도 내 배가 부서지고, 재물을 잃어도 내가 재물을 잃는 것인데, 자네가 웬 참견인가? 용이니 성황신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무식한 사람들이나 믿는 미신이니 그런 데에 뭣하러 돈을 쓰겠는가? 그런 말은 두 번 다시 입 밖으로 꺼내지도 말게.”(p.143-144)

국가의 목축장이 된 여의도에는 왕실의 연향에 쓸 가축을 기르게 되었는데, 성종 때에는 염소 같은 것도 놓아서 길렀다. 여의도에 가축을 주로 길렀던 이유는 강과 접한 땅인데다가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나서 물에 잠기는 바람에 풀이 무성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은 관청에 딸려 있으면서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노비들이었다. (p.172-173)

한강은 조선 초기에서 중기까지는 양반 사대부들이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풍류의 공간이었다가 17세기 이후에는 민초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으로 변모했다. 그 후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기간에는 동서양의 문명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문화적 충격을 능동적으로 흡수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기생이란 신여성들에게 낭만적 자실의 공간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기도 하였다. (p.188)

 

차례

서문 한강은 역사를 안고 미래로 흐른다

1부 역사의 강을 오르다

한강의 역사와 강변 사람들의 삶

왕도 꺾지 못한 도미 처의 사랑과 믿음

온달이 싸우다 죽은 곳은 서울의 아차산성일까?

왕의 효심이 서려 있는 살곶이다리와 낙천정

영도교와 화양정의 애절한 이별

갈매기와 친구가 되지 못한 압구정

한양 십경의 하나―달빛 아래 제천정

사육신과 노량진 사람들

잠실부군당과 송파나루에 서린 여인의 한

 

2부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

사라진 섬, 저자도

한강에서 떼돈 번 사람들

족집게 점쟁이도 피하지 못한 죽음

황금에도 흔들리지 않은 공암진의 형제애

양반도 뛰어든 얼음 채취 사업과 서빙고

용산강 나루에 나타난 용의 조화

이태원과 환향녀 전설

밤 깊은 마포 종점

가축들이 풀 뜯던 섬, 여의도

기생의 사랑과 자살의 사연이 강물따라 흐르다

한강에서 잡가를 부르다

 

3부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한강의 물결

한강에서 꽃피운 백제의 전성기

중원에서 벌어진 삼국의 힘겨루기

적들은 아무 저항 없이 한강을 건넜다

조선 500년 역사의 가장 굴욕적인 항복

살기 위해 떠난 피난민을 죽음으로 내몬 다리